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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 관하여
칠레는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의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극 해안가로부터 쭉 뻗어있다. 지형적으로는 세로로 약 4,30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이며 동시에 가로로는 가장 좁은 특이한 지형의 나라이다.
 
기후
지리적인 이유로 칠레에서는 모든 기후들을 찾아볼 수 있다. 북부에는 사막과 아열대 기후, 중부 계곡에는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그리고 남부에는 한랭다습한 기후를 보인다. 또한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계절이 북반구와는 반대로 나타난다
 
인구
2008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약 16,770,000명 집계됨.
 
면적
약 756,096km2이며 대서양을 포함하면 1,250,000km2 정도 된다.
 
언어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마뿌둥구(마뿌체인들의 언어), 라빠누이(이스터 섬주민들의 언어), 아이마라(북부 산악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몇몇 지역에서 스페인어와 병행하여 사용되고 있다.
 
국기
null  칠레의 국기는 공화국의 전통 색상, 즉 빨강색, 흰색 그리고 청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흰색은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를 뜻하고, 청색은 칠레의 하늘, 그리고 붉은색은 칠레 인디언을 의미한다. 5각별은 마뿌체 인디언들의 깃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징이다.
 
문장
칠레의 문장은 국기 위에 콘도르 독수리와 안데스의 유예물, 그리고 사슴으로 이뤄져 있다. 국가의 모토는 "이성으로 아니면 힘으로"이다. escudo.gif 
 
2010년 칠레 국경일
1월 1일 신정 8월 20일 독립영웅 탄생일
1월 17일 제 2차 대통령선거 9월 18일 국경일 (독립기념일)
4월 2일 부활절 성주간 (Semana Santa) 9월 19일 국군의 날
4월 3일 성토요일 10월 11일 두 세계의 만남의 날 (스페인의 날)
5월 1일 노동절 11월 1일 성직자의 날
5월 21일 해군의 날 12월 8일 성모 마리아의 날
6월 28일 산 페드로와 산 파블로의 날 12월 25일 성탄절
7월 16일 까르멘 성녀의 날    
 
화폐
화폐단위는 페소(Peso)이며, 100 센따보(centavo)로 나뉘어져 있다.
 
역사
BC 3800년부터 AD 1492년까지 유목민 생활을 하였던 여러 인이오 부족들은 현재 칠레 영토에 정착했다. 이 중 몇몇 부족은 고도로 발달된 농업과 화려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마야(Maya)문명과 아즈테카(Aztec)문명 그리고 잉카(Inca) 문명도 포함되어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라틴 아메리카를 정복하기 전의 칠레는 여러 인디오들의 고향이었다. 북쪽에는 아이마라스족(Aymaras), 아타카마족(Atacamenos), 디아기타족(Diaguitas)이 살았으며, 북부 해안과 중부 해안에는 주로 어업을 했던 창고스족(Changos)이 살았다. 그리고 중남부 지역에는 농업과 목축업을 했던 피쿤체족(Picunches), 마푸체족(Mapuches), 윌리체스족(Huiliches)이 살았다.

안데스 산맥의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에는 수렵 채집을 했던 여러 인디오들이 살았는데, 대표적인 부족으로는 치키야네스족(Chiquillanes), 페웬체스족(Pehuenches), 푸엘체스족(Puelches), 포야스족(Poyas), 오나스족(Onas)이 있다. 카날 지역에는 고도로 발달된 어업 기술과 돛을 이용한 항해 기술을 가진 쿤코스족(Cuncos), 초노스족(Chonos), 알라칼루페스족(Alacalupes), 야가네스족(Yaganes)이 살았다. 잉카 제국은 칠레 남부에서부터 칠레 북부의 마울레 강(Rio Maule) 유역까지 영토를 형성하였다. 잉카족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오기 시작한 15세기까지 이 지역을 지배했다. 1492년 10월 12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고, 그 후 50년 동안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153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칠레의 식민 시대는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상 가장 길고 힘겨운 식민 시대 중 하나였다.

스페인에서 파견한 페드로 데 발디비아 장군이 1541년 2월 12일 칠레의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칠레는 이 스페인 지배 시기에 사회, 경제, 문화의 기반을 닦았고, 18세기 말까지 스페인에서 페루로 파견된 총독의 통치를 받았다.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입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불만과 독립의 욕구가 표면화되면서 1810년 9월 18일 소집된 산티아고 시의회가 자치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칠레의 독립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같은 날 칠레 최초의 신문사 La Aurora de Chile의 첫 신문이 발행되었다. 이에 스페인은 페루에 파견한 총독에게 명령을 내려 칠레에 군대를 파견하였고, 칠레군은 호세 미겔 카레라와 베르나르도 오히긴스의 지휘 아래 스페인군에 맞서 격렬하게 싸웠지만 1814년 랑카구이 싸움에서 패하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로 잠시 몸을 피한 오히긴스가 1817년 아르헨티나의 호세 데 산 마르틴의 원조를 얻어 반격하여 차카부코와 마이포 싸움에서 스페인군을 무찌르고 이듬해 2월 12일 독립을 선언했다.

칠레의 헌법은 여러 번의 개헌 끝에 대통령제로 운영되는 민주공화국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칠레는 1833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는데, 이 새로운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은 행정권과 입법권이 분립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행정권이 여전히 강했기 때문에 1891년까지 강한 공권력을 가진 정부를 형성하였고, 이 시절의 칠레 정부는 커다란 번영을 이룩하였다.

스페인 지배자들이 페루에 탐험대를 보낸 것에 위협을 느낀 칠레 정부는 1865년 스페인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전쟁에서 발파라이소 항구가 많은 폭격을 당했다. 그 후 아니발 핀토 정부는 칠레 북쪽의 질산 광산 때문에 페루, 볼리바아와의 전쟁을 치렀다. 결국 칠레는 페루와 볼리비아를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중요한 질산 광산과 구리 광산 지역을 차지했다.

칠레는 19세기 후반 대통령제와 내각제 사이에서 심한 내부적 갈등을 겪었다.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분쟁 끝에 결국 국회가 승리했고 이 일을 계기로 1891년 호세 마누엘 발사메다 대통령이 쫓겨났다. 그는 훗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이 혁명으로 인하여 칠레 역사는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즉, 칠레 행정부는 약해지는 반면에 입법부는 강해졌고, 주권과 선거의 자유 그리고 국민의 많은 자유들이 보호를 받게 되었다.

칠레는 1926년부터 1931년까지 경제 호황기를 누렸다. 칠레의 경제는 세계 시장의 유동성과 질산 광산에 주로 의존했기 때문에 1931년 이후 첫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또한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새로운 합성 질산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칠레의 실업률은 급상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칠레는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된다. 3년간의 무정부 상태를 정리한 아르투로 알레산드리 정부의 등장으로 칠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과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 칠레에서는 1938년부터 1952년까지 급진파 대통령들이 연이어 당선되었다. 세계 공황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배경으로 사회, 공산, 급진 정당들의 지지를 받은 페드로 아기레 세르다의 인민전선 정부가 발족하였다. 그 다음에는 공산당의 지지를 받은 곤살레스 비델라 정부가 출연 하였으나, 그는 실제로 공산당을 불법화하는 정책을 폈다. 이어 이바네스 정권다), 보수파의 알레산드리 정권(58~64), 중도 좌파의 프레이 정권(64~70)이 등장하였다.

1970년 9월 선거에서 민주 연합당 (Unidad Popular)의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가 당선되었다. 그는 좌파 사회주의자였으며, 세계 최초로 의회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켰다. 아옌데는 구리 광산 및 은행과 많은 기업을 국유화시키는 거대한 좌파 정치와 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하였다.

1973년 9월 11일 우파의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붕괴되었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이끈 군사 평의회가 17년간의 독재정치를 하였다. 이로 인하여 100년 동안 유지해 온 평화적 민주주의가 깨지게 되었다. 피노체트의 군부 독재 기간에 국제 무역 및 내외국인의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장려하는 등 일방적으로 자유 시장 경제를 추구하였다. 이로 인하여 칠레의 경제 구조가 많이 바뀌게 되었다. 참고로 1981년에는 새로운 헌법이 시행되었다.

1989년 12월 11일 17개의 정당으로 구성된 민주 야당 연합이 공동후보로 내세운 기독교 민주당 소속의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가 공개 투포 선거에서 절대 다수의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로 인하여 17년간의 군정이 종식되었다. 아일윈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민주 국가의토대를 재정립하였다. 아일윈 대통령 이후에는 에두아르도 프레이 (1994-2000), 리카르도 라고스 (200-2006), 미첼 바첼렛 (2006-2010) 대통령이 선출되었다.